서울의 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숙군 쿠데타 1212 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 (2023년 11월 22일 한국 개봉)

 

서울의 봄

2023년 한국개봉작

 

서울 한복판에서 아군과 국민을 향해 전선을 구축한 보안사령관 전두광을 비롯한 반군의 모습과 홀로 반란군에 맞서는 진압군 측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의 뒷모습을 담아내며 강렬한 대비를 보이는 인터내셔널 포스터. 10.26 사건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직후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의 따뜻한 바람이 불 것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는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각각의 포스터 속 1979년 12월 12일 밤 풍경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을 보여주며 서울의 봄으로 그려지는 그날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서울의 봄이란?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직후부터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 확대조치까지 민주화 분위기가 감도는 정치적 과도기를 말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전두환의 숙군 쿠데타와 광주사건 무력진압으로 좌절되면서 완전한 민주화는 1987년을 기다려야 했다. 

 

문민 출신인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2월 28일 발표한 민권회복 조치에 따라 그동안 정치활동이 규제됐던 김대중과 윤보선 전 대통령 등 반체제 인사들의 정치적 자유가 다음 날 2월 29일 회복됐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 재야 지도자로 1971년 대선 신민당 후보자였던 김대중, 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의 이른바 3김이 차기 대통령으로 나서면서 정치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도 활발해졌다. 청화대로 향하는 창문 블라인드가 서울 시내 고층건물에서 일제히 철거됐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지는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치 개입 움직임을 공공연화시켰다. 4월 14일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중앙정보부 부장 대리로 취임하면서 민주화 세력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편 학생 시위가 학원에서 거리로 확대되고 노동운동도 탄광 노동자들에 의한 사북사건 발생 등 과격화되자 사회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5월 12일, 5월 20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1026사건 이후 계속돼 온 계엄령 해제를 결의하기로 했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3김도 민주화 추진에 공동보조를 취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신군부는 5우러 17일 오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해 사태 악화를 피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 (계엄령 전국 확대)를 취할 것을 결의, 군의 정치 개입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날 밤 임시국무회의에서 계엄령의 전국 확대 (그전까지 제주도는 대상에서 제외됐다)를 결의시켰다. 이에 따라 모든 정치활동은 금지되고 전국 대학은 휴교 조치가 취해졌다. 동시에 김대중을 계엄령 포고 위반으로 체포한 데 이어 김종필과 이후락, 박종규 등 박정권 핵심 정치인들을 부정축재 혐의로 체포했다. 또 한생운동과 노동운동 지도부, 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도 체포됐다. 이렇게 신군부 세력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서울의 봄은 종식됐다. 

 

서울의 봄 줄거리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의 군 내부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 보안사령관 두광 (황정민)과 그를 따르는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군인들은 정치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완고한 수도경비사령관 태신 (정우성)은 두광과 대립한다. 두 사람의 충돌이 커져가는 한편, 그 사이 계엄사령관이 납치되고 국방부 장관은 사라진다. 이런 혼돈 속에서 누구나 갈망하는 서울의 봄은 의외의 방향으로 가는데...

 

서울의 봄 주목 포인트

 

  • 1970년대 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보안사령관 전두광 / 배우 황정민
  •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을 모티브로 한 이태신 / 배우 정우성
  • 육군참모총장 정승환을 모티브로 한 정상호 / 배우 이성민
  • 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노태건 / 배우 박해준
  • 국방부 조사대장 김진기를 모티브로 한 육군본부 헌병대사령관 김준엽 / 배우 김성균
  • 최규하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최한규 대통령 / 배우 정동환
  • 육군 특수전사령관 정병주를 모티브로 한 공수혁 / 배우 정만식
  • 특전사 비서실장 김오란을 모티브로 한 소령 오진호 / 배우 정해인

서울의 봄 천만 시그널!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14일 만의 쾌거다. 12월 5일,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네트워크에 따르면 서울의 봄은 오후 3시 기준 500만 334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500만의 벽을 넘어섰다. 

 

2023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5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은 범죄도시3와 밀수 두 편뿐이다. 서울의 봄은 개봉 14일 만에 마의 벽을 넘어 진가를 발휘했다. 역대 1000만 관객 동원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린 광해 황이 된 남자, 국제시장보다 빠른 추이다. 

 

11월 22일에 개봉한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반란군과 진압군의 팽팽한 대립을 그린 작품으로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황정민, 정우성, 박해준, 김성균 등이 출연했다. 압도적인 입소문을 앞세워 관객을 모으고 있는 만큼 반가운 천만 시그널이 나와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국방안보라령관 전두광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정해인의 특별 출연

 

배우 정해인이 영화 서울의 봄에 특별출연해 연일 화제다. 정해인이 특별춘연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11월 22일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를 장악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극중 정해인은 특전사 오진호 소령을 맡았다. 오진호는 같은 특전사이면서도 사령관을 체포하려는 4공수여단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특전사령관 곁을 떠나지 않은 용기있는 캐릭터다. 오진호 소령을 연기한 정해인은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해 강한 여운을 선사한다. 첫 등장 때부터 강인한 시선과 카리스마, 흔들림 없이 곧은 자세로 특전사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또한 위기 속에서도 탄탄한 목소리와 충성심 강한 눈빛으로 캐릭터 자신의 이야기를 탄탄히 쌓아가며 눈을 뗄 수 없는 열연을 펼쳤다. 

 

김성수 감독이 말하는 1979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이 이번 작품의 소재이기도 한 숙군 쿠데타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1979년 12월 12일, 19세였던 김성수는 집 앞에 나와 서울 한남동 부근에서 우연히 총성을 들었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눈앞에 보이는 집 근처였다. 장갑차가 눈앞을 지나갔다. 서울 한복판 호기심이 많은 청년은 총성이 난 곳을 향해 달렸다. 한참을 달려 이태원 인근 육교를 올라갔다가 군인에게 저지당했다. 순간 또다시 총성이 나며서 군인들은 머리를 싸매고 웅크렸다. 청년 김성수도 쭈그리고 앉은 채 걸어갔다.

 

그로부터 4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김성수 감독은 아직도 그 광경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숙군 쿠데타에 관해서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터득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그 사건이 서울의 봄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황정민이 전두광이라는 이름으로 머리는 물론,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정우성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맡아 대립각을 세웠다. 군인의 승리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은 영화에서는 선악의 구도를 갖는다. 

 

 

군 내부 비밀결사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는 역사에 12.12 군사반란으로 기록되어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근현대사를 영상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문에 답하듯 서울의 봄은 박진감으로 승부한다.

 

12월 12일부터 13일 새벽까지 9시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렸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면서 복잡하게 상황이 변해가지만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근현대사 정치를 다루려면 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변호인 등, 제작진은 보이지 않는 세력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감독 : 제작하는데 걱정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실제 인물과 이름을 바꾸는 것에 관해서는 고민했다. 첫 번째 대본은 다큐멘터리 수준의 사실이 잘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인간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면서 오히려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전두광이나 이태신, 노태건 같은 이름은 스태프의 투표로 정해졌다. 전두광의 이름은 압도적인 표를 얻었다. 

 

영화가 사시회에서 개봉한 뒤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갈등이 있는 정치적 사건이 소재여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만 김성수 감독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극장에서 김성수 감독은 부끄러운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감독 : 친척들에게 칭찬받는 느낌이었다. 젊은 관객이 즐겁게 봐줄지 걱정이었다. 너무 옛날 이야기라서 과연 흥미를 가져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극이기도 하지 않나.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을 넘어 재밌게 봐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김성수 감독은 왜 굳이 숙군 쿠데타 (12.12 군사반란)를 소재로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 때문에 새삼 영상화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다. 

 

감독 :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 사건은 이날만의 일이 아니다. 내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많은 인간의 욕망을 목격해 왔다. 우리 생활에도 욕망이 만연해 있다. 승자들 사이에서도 의심하고 걱정하고 무서워하고. 그런 일의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에도 다양한 다툼이 있을 것이고 결정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모든 일이 반드시 선의와 지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서울의 봄에서 주연을 맡은 황정민과 정우성. 극중 황정민과 정우성의 긴박한 연기가 맞붙는다. 전두광으로 분한 황정민은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실재 인물과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듯 보이는 경계선으로 우뚝 선다. 평소 안정적인 연기로 유명하지만 외모를 완전히 바꿔 등장해 황정민 연기 인생의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감독 : 영화 아수라 (2016)를 찍으며 정민 씨의 연기력에 정말 감탄했다. 그리고 연극 리처드 3세를 봤다. 셰익스피어가 쓴 인물 중 가장 사악하고 내면이 일그러진 인물을 멋지게 연기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 뵐 기회가 있어서 그때 부탁드렸다. 당연히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초 만에 승낙을 해줬다.

 

정우성은 끝까지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며 욕망에 찬 군인들과 대치한다. 앞서 정우성은 영화 헌트에서도 김정도 역을 맡아 신군부 세력과 다툰 바 있다. 헌트에서 맡은 배역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정우성은 이번 섭외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감독 : 안 한다고 했는데, 끈질기게 섭외했더니 결국 맡아주었다. 곧은 신념을 가진 군인, 이 역할에 정우성만큼 맞는 배우는 없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의 매력은 오히려 신군부에 쏠린다.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달리는 모습이 어쩌면 관객의 속마음을 건드릴지도 모른다. 성실하고 고집 센 이태신보다 본능에 충실한 전두광이 오히려 인간적일지 모른다. 

 

감독 : 물론 그럴 수 있다. 멋있는 악당은 내가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대전제는 군인의 총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군인은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대전제를 지켜야 한다. 개인의 욕망과 명예를 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태신은 사리사욕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진짜 군인인 것 같다. 

 

 

 

44년 전의 군사 쿠테타를 다루다 

 

첫 쿠데타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권이 1960년 4월, 생도혁명에 의해 전복된지 1년여 만인 1961년 5월 16일, 나중에 대통령이 된 당시 44세의 박정희 소장 (제2야전군 부사령관)이 이끄는 육사 8기생을 축으로 한 청년 장교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실질 18년간 집권했던 박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측근 김재규 KCIA(한국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에게 암살된 혼란 속에서 당시 48세의 전두환 소장 (국군보안사령관)을 지도로 한 육사 11기생을 중심으로 40여 명의 젊은 장교들이 그해 12월 12일 궐기해 성사시켰다.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런 꺼림칙한 날을 앞두고 12.12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중이다. 44년 전, 망각의 저편에 있었던 일. 그것도 정치를 다룬 탄탄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폭발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개봉과 동시에 흥행 성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관객 동원 수를 보면 영화가 11월 22일 개봉한 지 아직 3주가 채 되지 않았지만 12월 11일 오전 현재 관객을 700만 명에 달한다. 이 추세라면 천만 명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꼽힌다. 흥행 속도로는 과거 123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이 된 남자(2012), 1425만 관객을 모은 국제시장 (2014)보다도 빠르다. 한국의 인구는 약 5150만 명, 천만명을 돌파하게 되면 국민 5명 중 1명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셈이다. 

 

이 영화는 쿠데타가 발생한 날 서울에서 벌어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등 군 당권파와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등 소장 장교들과의 9시간에 걸친 일촉즉발의 암투를 그린 실록 영화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979년 10월 26일부터 광주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1980년 5월 17일까지를 민중화 투쟁 시기로 정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 사망 후 민주화 흐름을 역류시킨 것이 바로 1979년 12월 숙군 쿠데타였다. 

 

이 악명 높은 쿠데타를 주모한 국군보안사령관 역은 국제시장의 황정민, 쿠데타를 저지하려 저항한 수도경비사령관 역은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정우성, 쿠데타파에 체포된 육군참모총장은 미생의 이성민이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성민은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했다. 

 

이밖에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동료이자 나중에 대통령이 된 동기 9사단장 노태건은 부부의 세계로 인기를 누린 박해준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다. 서울의 봄 여파는 엄청나 이 영화의 예상치 못한 대박에 자극받았는지 방송사들도 서둘로 프로그램을 개편해 잇따라 현대사를 재상영하면서 모두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다. 

 

MBC는 2005년 4월부터 9월까지 방영된 연속극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을 12월 2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했으며 OBS 역시 12월 9일부터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OTT 서비스 등도 남산의 부장들과 전두환 정권을 퇴진시킨 1987년  민주화 시위 관련 콘텐츠를 적극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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